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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40기가 2009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릉은 당대 최고 장인들이 동원돼 만든 조선 건축,유교사상의 결정체였다.
그중 정조는 아버지 思悼世子인 장조(莊祖)의 융릉(隆陵) 조성에 혼신을 다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와 그리고 옹주 가운데 7번째인 화협옹주를 병적으로 싫어했다.
대화중에 세자가 대답을 하면 그 대꾸로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물을 떠오게 하여 귀를 씻고,
그 씻은 물을 화협옹주가 있는 쪽으로 버렸다
이 상투적인 귀씻이(洗耳)에 대비,
영조가 세자방에 들면 으레 그 뒤를 귀씻이 물을 든 내시가 따르게 마련이었다.
정조 나이 11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 벽파와의 갈등 속에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는 비참한 사건이 일어난다.
주류 세력이 아버지에게 가한 이 끔찍한 비극이
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통한으로 자리 잡는다.
52년간 재위한 조선왕조 최장수 왕인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로
조선의 부흥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장희빈의 아들인 이복형(경종)을 죽게 해 ? 왕위에 오르고
정치적 위협이 되는 자기 아들을 뒤주속에 넣고 죽인 인물이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자, 폭군도 아니였다
다만 정권 실세인 노론을 배척하다
아버지(영조), 마누라(혜경궁 홍씨), 노론에게 거세된 어설픈 권력이었다
살아있는 권력은 무섭도록 잔인했다
정조는 왕이 되자 아버지 묘소를 수원 남쪽 화산으로 옮기고
13차례 묘소를 찾는 원행(園幸)을 한다.
규장각을 신설해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는 인재 등용을 하고
신주류 세력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면서 친위부대인 壯勇營을 신설해 왕권을 강화했다.
마침내 정조 18년(1794년) 수원을 화성으로 고치고
묘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신도시 건설에 착수해
2년7개월 만에 5.74㎞에 이르는 아름답고 견고한 성곽을 쌓고 수십 채 행궁을 건설한다.
가을날 간만에 달사님과 융건릉에 가니
병아리 유치원생들이 능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3대의 恨 많은 역사의 사연을 간직한채
200여년의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능에 가본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