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왕..
휘 정명(政明) ·명지(明之). 자 일초(日怊). 문무왕의 맏아들.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 비는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의 딸. 665년(문무왕 5) 태자에 책봉, 문무왕에 이어 즉위한 후, 장인인 김흠돌이 모반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 김흠돌을 주살(誅殺)하고 비 김씨를 폐위시켰다. 682년 위화부령(位和府令) 2명을 두어 선거(選擧) 사무를 맡게 하고 국학을 창설하여 학문을 장려하였으며, 683년(신문왕 3)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또 보덕왕(報德王) 안승(安勝)을 소판으로 기용하여 김(金)씨 성(姓)을 하사하였고, 이듬해 안승의 족자(族子) 대문(大文)이 금마저(金馬渚)에서 모반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하고 그 땅을 금마군(金馬郡)으로 하고 고구려 유민들을 분산, 거주하게 하였다.
685년 9주를 정비하였고, 서원소경(西原小京)을 설치, 봉성사(奉聖寺) ·망덕사(望德寺)를 창건하였으며, 항복한 고구려 유민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689년에는 녹읍(祿邑)을 폐지하고 조(租)를 주기로 개정하였다. 이 밖에도 일본과 당(唐)나라에 사신이 빈번하게 내왕하였고 문화의 흥륭정책을 도모하여 설총(薛聰)과 강수(强首)와 같은 대학자가 배출되는 등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구름이 이뻐서 잠깐 들렸던 신문왕릉에서...